영대 한줄연성

BAP 2017. 4. 24. 18:11

이어지는거 아님


1.


오늘 집에 가지 마라


여름이래도 아직 유월이라 밤은 춥다. 담백하고 깔끔한 유영재의 눈꼬리. 나를 쳐다본다. 


싫나


유영재는 한참을 나를 쳐다본다. 방금까지 입술을 맞대고 있었던 상대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눈빛. 대문 앞 가로등은 고장난지 오래다. 가로등 핑계 반 집에 부모님이 안 계시는 핑계 반으로 유영재가 굳이 나를 우리집 앞까지 데려다 준 것이다. 교복 셔츠 안으로 찬 바람이 들어온다.


춥다. 들어가.


2.


유영재. 집이 너무 넓어.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정대현답지 않게 너무 쓸쓸해서 나는 외로움을 타는 강아지 생각이 났다. 


3.


넌 나랑 밀폐된 공간에 있으면서 공부가 되냐?

아니면 뭐. 어쩔까.


서늘한 목소리. 마주앉은 영재가 책을 탁, 덮는다. 영재와 사귀면서 애욕이나 정염이 차갑게 타오를 수도 있구나, 깨달았다. TV나 영화에서는 언제나 주인공의 눈빛이 뜨겁게 불타올라서 몰랐는데, 사실 정말 무서운 건 이런 눈이었다. 꼼짝없이 얼었다가 영재의 손이 닿는 부분부터 서서히 해동되는 것처럼 눅진눅진하게 녹아버린다. 언뜻 가위에 눌리는 감각과도 비슷하다. 다른 점은,

이번에 유영재가 먼저 잡아버린 것은 내 손이고 손 끝을 까딱하는 걸로는 가위를 풀 수 없다는 것이다. 


4.


긴장해서 눈 끝이 찡긋했다. 영재는 나를 놓았다.


니가 이러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내가 아무것도 못하겠잖아.

내가 무서워?


응 무서워 네 눈을 보면 꼼짝도 못하겠어, 말하지 못하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 집에 갈게.


영재가 책을 챙겨 방문을 열고 나가는 것을 마냥 보고있을 수밖에 없었다. 너네 싸웠니, 사과를 깎아들고 들어오는 엄마한테도 나는 고개를 저었다.


5.


걔는 그런 애였다. 달라면 주고 주면 닳는.


누가 그래요? 정대현?


유영재는 코끝으로 웃었다.


정대현이겠지. 아니면 누가 나한테 '달라면 주는' 사람이라고 하겠어.


6.


나랑 무슨 놀이를 하고 싶은 건지 확실하게 말해줘야 해. 연애놀음을 하고 싶은 건지, 결혼을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냥 친구 놀이나 룸메, 동거인 놀이 정도로 족한건지. 그것도 아님 그냥 페어이고 싶은 건지, 각인하고 싶은 건지.

유영재...

난 너의 사랑 받는 펫이고 싶어.


당황한 건 유영재였다. 이렇게까지 대놓고... 부끄럽지만 말해놓은 대현이 오히려 더 후련한 얼굴로 영재를 쳐다보았다. 영재는 입안이 달아서 대현의 눈빛이 잘못 읽혔다. 사랑해줘.


7.


나 괴롭히지마

니가 괴롭지마, 그럼 내가 괴롭혀도 괴롭히는 게 아니잖아.


유영재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아주 깜찍한 말을 했다. 


8.


솔직한 말로 그 애가 이해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괴롭히지마'라니. 괴롭히지마는 유사 이래로 3살 이상의 인간에게는 늘 '괴롭혀줘'로 들렸다. 얼마나 설레는 말인가. 괴롭고 싶어, 괴롭혀줘.


9.


유영재는 어마무시하게 예쁘게 웃더니 말했다.


필요, 좋지. 말이야 고상하고 듣기엔 좋지. 나 너 필요해, 좋은 말이지. 그런데 그게 지금 니가 나한테 했어야 할 말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 정대현.


10.


걔가 히히 웃으면서 뜨겁지마 유영재 하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할까 싶어서 같이 주저앉아 한참을 걜 보고 있었다. 술에 취해 엎드린 정대현의 머리카락이 지나가는 바람에 날렸다.


11.


대현이는 소파에 나른하게 앉아있었다. 영재는 다리를 벌리고 그 위로 올라타 쪽, 쪽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윗입술이 계속해서 눌리자 담배 생각이 났다. 멍하니 저를 쳐다보는 대현이를 보며 영재가 미심쩍은 눈으로 물었다.


너 이상한 생각하지

새...

어?

새 부리 같...

아 미친 정대현이랑 안 해 ㅡㅡ 


12.


나 피하지 마. 이제 니 마음 같은거 신경 안 써.


그렇게 말하면서도 섬세한 유영재는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벌벌 떨며 절절 기겠지. 입을 맞추려 다가오는 속눈썹이 떨린다.


13.


입이 맞고 혀가 섞인다. 영재는 마음이 급해져서 대현이 목덜미를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 아파, 입 안으로 울리는 소리라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을 텐데 영재는 놀라서 입을 떼어냈다. 긴장에 떨리는 눈동자와 촉촉한 입술, 여전히 마음은 급해 손은 떼지도 않고 눈을 맞추고 묻는다.


아파?

아파...

미안, 다시 하자.


이번엔 반대로 고개를 틀어 입술을 맞댄다. 말랑말랑한 혀가 아까보다 조심스럽게 들어오지만 손은 여전하다.


14.


나, 도망 안 가.

어?

나 어디 안간다고 유영재.


천천히 거리를 벌리자 뒤로 몸을 빼면 빼는대로 밀어붙여오던 영재가 가만히 멈춰섰다. 억지로 잡고있던 뺨에서도 손이 스르르 떨어진다. 호흡이 긴 키스에 붉게 상기된 얼굴 위로 제 손자국이 어릿어릿한 게 야하다.


15.


하악, 하. 따라오지마!

어디가는데!

아, 따라오지 말라고!


영재는 얼굴이며 머리가 비에 젖어 엉망이었다. 돌아보며 짜증스럽게 대꾸하는 영재의 말에 한참을 뛰던 대현이 발걸음을 뚝 멈추었다.


왜 그러는건데.

아, 진짜...


영재는 고개를 숙이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영재는 힘들었으나 이겨냈고, 고개를 들었다. 웃지는 못했으나 화내는 목소리도 아니었다.


내일 얘기하자.

내일 학교 올거야?


정대현은 이제 숫제 울 듯한 표정이 되어 눈이 촉촉했다.


가야지.

꼭 와. 꼭이야.


영재는 작게 한숨을 후, 쉬었다. 응 알았어. 대현이는 영재를 짧게 쳐다보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영재는 쏟아지는 비를 다 맞으면서 가방을 메고 돌아가는 대현이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영재는 제가 맞는 것은 생각도 않고 비를 맞고 돌아가는 정대현이 안쓰러웠다.


16.


앗, 아... 만지지마...

너무 느껴져어, 힘들어...


정대현의 얼굴은 눈물로 엉망이었다. 얼굴보다 뒤가 더 엉망이지만... 


17.


유, 와 봐.

왜요


엄마 나이를 훌쩍 넘는 마나님의 부름에도 고분고분하는 법이 없이 꼭 토를 단다. 유영재는 실제 제 위치와는 상관없이 늘 갑질을 하려 들었다. 성격 문제였다.


타이가 그게 뭐야.

아, 하지 마요.


영재는 귀찮은 것을 쳐내듯이 고개를 돌렸으나 결국 타이를 잡혀 얌전히 서 있었다. 눈을 내리깔아 타이를 고쳐매는 손을 가만히 보고 있는 것이 마치 수려한 백합이 피는 듯한 외모였다. 그 대궐의 안주인이 조그만 애첩에 빠져서는 정신을 못차린다더니 그럴만하더라고 사람들은 쑥덕거렸다.


18.


유영재, 와 봐.


이 경우는 다르다. 유영재는 정대현과의 관계에서는 어느모로 보나 갑이었다. 그러므로 유영재는 손하나 까딱않고 오히려 대현이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어제

어제

그 여자랑 만났지


유영재는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 것에 대해 따로 말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문제로는 이미 정대현에게 한 번 얻어맞은 적이 있다. "핏줄 티를 내고 싶은거야, 혼외자식 팔자가 그런거야?" 하고 유명 여배우와 똑닮은 눈물점에 시비를 건 것이다. 대현이는 영재의 바람처럼 예쁘게 생긴대로 펑펑 우는 대신 주먹을 내지르며 개새끼, 우리 엄마 얘기 하지마. 하고 으름장을 놓았다.


가서 뭐 했어?


대현은 이제 거의 영재의 위로 올라탈 기세였다.


말 못할 짓?

어떤 건데... 이런거?


두 사람의 입이 짧게 겹쳤다 떨어졌다. 뭐 그런거. 아 진짜, 그 여자랑 하지말라니까. 쳐다보는 얼굴이 처연했다. 흐르는 색이며 아우라가 아무리 봐도 그 여자보단 영락 없이 여배우의 얼굴인데, 세상사람들은 다 장님인가. 생각이 표정으로 떠오르는 아이가 아니니 대현이는 영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일이라 애가 달았다.


유영재...이제 그여자가 불러도 가지 마.

그럼?

나한테 와.

사람들이 참 좋아하겠다. 매일 같이 신문에 오르내리는 그 기업 모자가 스무살짜리 남자애한테 푹 빠져서 정신못차린다는 걸 알면.

알면서 왜 그래.

그래도 원조교제는 게이설에 덮어질테니까. 효자야 정대현. 

말고. 내가 너한테 푹 빠져서 정신 못차린다는 걸 알면서 왜.



19.


유영재가 상처 받은 눈새 정대현의 말말말

3. 잠깐만... (키스하기 직전에 고개돌림)

2. 무서워 너

1. 우리 그냥 다시 친구하면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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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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